도박에 대한 관용적인 사회태도는 3.1운동 이후 전개된 소위 ‘문화통치’ 로 인해 개인 행위에 대한 자유가 상

대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 다고 할 수 있다. 총독부는 조선인의 교화란 차원에서 조선의 흥행업

을 활 성화시키고자 했다. 여기에는 근대적 여가문화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존재 했다. 1910년 이전부터 통

감부 관료들은 조선인에게는 오락이 부재하다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조선인 여가문화를 야만시하는 태도

는 조선거류 일본 인에 대한 인식으로 연결되었다. 거류일본인이 취미의 저열로 인해 한인화 되었다고 비판

하면서 거류일본인을 위한 도서관, 음악당, 공원 등의 공공적 오락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34) 3.1운동 이후 경성부는 서울에 도서관, 공원, 동대문 운동장 등 공공적 오락시설물을 갖추기 시작했다. ‘건

전한 오락’을 위한 시설물의 필요성은 조선의 민족주의 정치기획세력들 사 이에서도 제기되었다. 이들은 조

선인의 생활개선을 위해 ‘건전한’ 취미생활 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흥행업의 활성화는 이러한 사회분위기와

함께 서울, 부산, 대전 등의 도 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시화는 거주지와 노동공간 의

분리, 분리된 공간을 연결시키는 도로망, 365일 지속되는 노동환경으로 인해 휴식과 노동이 분리되는 등 일

상생활의 조건을 변화시켰다. 또한 산 업화 과정에서 노동과정의 분업화 등으로 여가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 하면서 여가행위를 위한 공공시설이 증대되었다. 건전한 여가행위가 노동 생산성 제고에 기여한다는

관념이 등장하면서 건전한 여가시간에 대한 개 인적, 사회적 관리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특히 1920년대

집회와 언론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개인의 사적영역이 확대되면서 흥행업이 활 성화되기 시작했

다.총독부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흥행업에 대한 관리의 법 적 근거를 마련했다. 1922년 각

부와 도령으로 발포된 흥행취체규칙이 제 정되었고, 이 과정에서 오락장에서 유희적 성격의 간단한 도박행

위가 허용 되기 시작했다. 당시 흥행업의 범주는 극장, 활동사진관, 기석(寄席, 재담)이 라고 규정했고, 연극,

활동사진, 기예(奇術), 낭절(浪節, 민요) 강담(講談, 야담), 경업(輕業, 곡예), 정류리(淨瑠璃, 민요), 아광언(俄

狂言, 즉흥희곡), 음곡(音曲, 가곡), 연주(演奏), 각력지거(角力芝居, 힘겨루기 재주), 동물지거(動物芝居, 동

물재주), 견 세물(見世物, 구경거리) 기타 공중을 모아 놓고 연예를 관람하도록 하는 것으 로 규정되어 있었

다. 36) 공공적 오락시설에 대한 허용과 관리의 법적 근거 가 마련되면서 다양한 흥행업들이 이 법의 관리 하

에 포함되었다. 댄스홀, 경마장, 골프장, 마작장, 당구장, 스포츠관람 등이 흥행업에 포함되었다. 37) 특히

1920년대 처음 생겨난 경마장, 마작장, 당구장 등의 오락장은 공인된 도박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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