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경마대회가 1914년 4월 3일 용산의 일본군 연병장에서 개최된38) 후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설

립되어 1년에 봄과 가을 2차례 경마대회가 열렸다. 39) 1928년에는 신당리 경마장이 건립되고 경마대회가

열릴 때면 동 대문에서 경마장까지 버스가 운행되면서 경마대회는 크게 성행했다. 40) 경 마는 입장권에 마

권이 포함되어 있었고, 가격에 따라 마권의 장수도 달랐 지만, 우승마에 내기를 거는 방식은 현재의 경마와

같았다. 41) 신당리 경마 장이 개장되고 경마가 유행하면서 경마는 공인된 도박장으로 인식되기 시 작했다.

42) 경마대회가 전국적으로 개최되고, 흥행을 위해 경마라디오 중계 가 실시되면서 라디오 방송을 이용한

경마도박이 등장하기도 했다. 43) 경마 도박이 확대되자 총독부는 공인되지 않는 경마장을 불법화시켜서 단

속을 강화했다. 44) 1920년 초 문명의 선진오락물로 소개된 마작은45) 20년대 후반 전국적으 로 유행했고,

마작을 할 수 있는 마작장이 우수죽순 생겨났다. 복잡한 경기 규칙과 한 경기에 1시간이 넘었던 마작은 상류

층, 학생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언론매체에 마작망국론이 등장하면서 마작은 조선인사회의 타락 을

증명하는 현상의 하나로 읽혀졌다. 46) 총독부는 도박으로 변질된 마작장 을 관리하기 위해 공인 마작장 이

외의 모든 마작장을 불법화시켜 단속하기 시작했다 공인된 경마장과 마작장의 존재는 ‘공인된 도박’을 기정

사실화시키는 것 이었고, 도박에 대한 단속은 도박행위 자체 보다 공인된 장소인가의 여부 에 의해 결정되

는 상황을 초래했다. 오락장에 대한 승인과 관리를 위한 법 적 조치와 동시에 ‘공인된 도박장’이 등장한 것이

었다. 경찰의 단속은 도박 행위가 발생하는 곳이 아니라 행정 권력의 관리 하에 포섭되지 않은 곳, 공 인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도박이었다. 동시에 공인된 도박장에서의 도 박은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었

다. 도박이 사법적 영역에서 행정적 영역으로 점차 이관되어 가는 과정에는 ‘공인된 도박장’의 역할이 컸다.

1930년대 발행된 경찰교육교재에서 풍속경찰의 업무는 흥행, 풍속을 침해 할 우려가 있는 영업, 그밖에 풍

속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로 구분되어 있었고, 그 중 도박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업무지침이 설명

되었다 여기에는 사행심은 인간이 본성이기 때문에 없앨 수는 없지만, 노동의욕 을 상실시키기 때문에 관리

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있다. 따라서 단 속의 대상은 ‘가장 심한 사행행위’로 간주되는 도박과 복권

이었다. 그러나 단속해야할 도박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도 박에 대한 단속은

사회적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방임하 면 선량한 풍속을 해하는 동기가 됨으로 일정한 경

찰 제한 아래 행해지도 록 함’이란 규정에는 경찰이 관리 감독한다면 도박이 풍속을 해치고, 노동 의욕을 상

실하는 정도까지 심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포함되어 있 다. 풍속경찰의 업무지침에서 도박은 사행

심의 발로로 이해되었고, 사행심 은 근면한 노동력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경찰력을 통해 사회적 관리

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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