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한·미 수호통상조약」으로 한국과 미국이 최초로 공식적인 관계를 가졌으나,

“현대적 의미의 한미관계” 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분할을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을 맺기도 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그들의 공동적인 독일이 패배함으로써

양 강대국은 대립을 시작하였으며, 이는 곧 냉전으로 발전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지위를 갖게 된 미국은

미국의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 소련 등이 경쟁하고 있던 동북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하여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정책을 모색한다.

미국이 한국에서 영향력을 갖기 원했던 이유는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소련은 확실히 한반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련의 독점적 영향력 행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 소련, 중국의 한반도 신탁통치를 제안하였다.

이는 역사적·지리적 관계의 근접성을 내세워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하여 노력하던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고, 이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미국의 영향력을 심기 위함이었다.

세계적인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협의는 실패하게 되었고,

결국 1945년 8월 미국은 38선 분할을 제안하였다.

소련이 이를 받아들여 한반도는 분단이 된다.

미국은 38선 이남지역을 점령하여 군사정부를 세웠고

이 지역에 미국의 이념을 확산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로 1948년 8월 15일 미국은 유엔의 지원 하에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적으로 수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의 정치이념과 제도를 본받아 헌법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며, 8월 4일에는 내각을 구성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서의 확실한 세력권을 마련하게 되었다.

한편, 미국은 아시아 보다는 유럽의 안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에 있어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고,

그저 한국정부가 미국의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해 주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군사개입을 피하려 했던 미국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한국 전쟁에의 개입을 결정하였다.

이는 미국이 한국전쟁을 “공산권의 서방세계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강력히 개입하여

“한반도 적화통일”을 막고자 함이었다.

한국과 미국이 공식적인 동맹조약을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하여

미국이 한국전쟁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은 군사동맹 그 이상의 관계를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후 3년 동안 전시동맹관계를 맺어 온 한국과 미국은

1953년 10월 1일에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공식적인 동맹관계를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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